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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스웨덴의 이건희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

중요한 단서들

by 닥터트렌드 INFJ 2010. 11. 1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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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최대 재벌 발렌베리家의 首長 마르쿠스 발렌베리를 만나다
기업흥망의 열쇠… 선장이 우선 그 다음이 배

한국이건희 삼성 회장이 있다면, 북구(北歐)의 산업 강국 스웨덴에는 이 사람이 있다. 마르쿠스 발렌베리(Marcus Wallenberg) 회장. 올해 54세인 그는 스웨덴 최대 재벌가인 발렌베리 가문의 수장(首長)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의 대표 은행 SEB와 유럽 최대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 에릭슨(Ericsson), 항공·방위산업체 사브(SAAB·자동차 부문은 매각했음), 중전기·산업장비 업체 ABB 등 19개 기업의 경영권을 직·간접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소규모 투자까지 합치면 100개 기업이 넘는다. 마르쿠스 발렌베리는 이중 SEB와 일렉트로룩스, 사브의 회장(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발렌베리가(家) 기업들이 스웨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스웨덴 GDP의 30%, 스웨덴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3분의 1이 발렌베리에서 나온다고 한다. 종업원은 40만명이 넘어 스웨덴 전체 인구의 4.5%에 이른다. 삼성그룹 매출이 우리나라 GDP의 약 18%를 차지한다는 분석과 비교하면, 스웨덴 경제의 '발렌베리 의존도'는 훨씬 높다.

 

기업가 정신을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Schumpeter)의 시각으로 보자면 발렌베리도 삼성도 모두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하지만 사회적 척도로 보면 두 왕국은 사뭇 다르다. 한국인들에게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은 애증(愛憎)의 대상이지만, 발렌베리 가문과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스웨덴 국민의 폭넓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발렌베리 회장은 2003년 스톡홀름에서 만나 기업 지배구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발렌베리라는 한 가문이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고, 그러면서 국민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Weekly BIZ는 11일 폐막된'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B20)' 행사에 참가한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을 스톡홀름에서 미리 만났다.

SEB은행·일렉트로룩스 등
19개 기업 경영권 직·간접 행사
스웨덴 GDP의 30%나 차지


이건희 회장과 스톡홀름서 만나
기업지배구조 등 얘기 나누기도

발렌베리가의 심장인 SEB 본사는 스톡홀름 시내 금융가 한가운데 있었다. 19세기 양식의 석조 건물. 1층 로비에는 창업자인 앙드레부터 현 회장인 마르쿠스까지 SEB를 이끌어온 발렌베리가 사람들의 얼굴이 청동 부조로 새겨져 곳곳에 걸려 있었다.

SEB는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가 시작된 기업이다. 창업주인 1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56년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창립해 오랫동안 가문의 핵심 기업이자 지주회사로 기능해 왔다. 지금은 지주회사의 기능을 투자회사인 인베스터(Investor AB)에 대부분 넘기고, 순수 상업은행으로 남아 있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이 11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의 금융 분과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국제 무역거래 자금의 유동성이 크게 줄어들면서 국가 간 무역 촉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을 현재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았다. /뉴시스

기자가 안내된 2층 회의실엔 원탁 테이블과 붉은색 소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버튼 하나로 10여 곳을 단번에 연결할 수 있는 커다란 키폰도.

족히 100년은 됐을 것 같은 낡고 거대한 괘종시계가 '덜컹'하고 분침을 옮기는 소리와 함께 발렌베리 회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50대 중반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날렵한 몸매의 중년 신사였다. 그와 함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수행원'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에릭 벨프라지(Belfrage) 수석부사장 겸 회장 고문. 발렌베리의 최측근이자 막후 실력자. 우리나라로 치면 이학수 삼성 전 부회장 같은 사람이었다.

발렌베리 회장은 "헬로(Hello)"라며 먼저 격의 없는 인사를 건네왔다. 앞의 회의가 길어지면서 15분 정도 늦게 도착한 그는 B20 외에도 발렌베리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것을 예상해서였는지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예정됐던 B20과 은행업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바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으로 들어갔다.


―발렌베리 가문은 150여년간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오래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우선 세대마다 사업에 관심이 있고, 또 열정적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후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만사 성공의 핵심은 깊은 관심을 오랫동안 이어나가는 것인데, 저는 그 점에서 우리 가문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더 들자면, 선대(先代)들이 사업을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핵심 경영진들을 대단히 잘 찾아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결코 독단적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경영자들과 이사회 멤버들을 찾기 위해 공을 들였죠. 또 재무적 안정성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항상 높은 유동성을 유지했고, 재무적으로 보수적인 경영을 해왔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업을 끊임없이 재개발하고 재창조해 왔다는 겁니다. 우리 가문의 사업 중에는 50~60년 이상 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항상 하던 방식대로 해오지는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오래된 사업을 재창조해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높은 적응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버렸더니 얻은 '가문의 영광'

발렌베리家, 주식 소유 않고 공익재단에 귀속해 투명 운영…
"재벌이라 욕 안먹고 형제간 경영권 다툼도 없더라"

발렌베리 가문에는 "선장이 우선, 그다음이 배"라는 말이 있다. 1870년대에 발렌베리를 신흥 금융가문에서 대규모 기업 집단으로 변모시킨 2세대 경영자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Senior)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로, 기업의 흥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훌륭한 리더(CEO)라는 것이다.

그는 1878년 금융위기로 발렌베리가의 은행인 SEB와 거래하던 수많은 기업이 부실에 빠지자 이중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체들을 출자 전환을 통해 회생시키고, 발렌베리가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 부실의 원인은 무능한 경영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유능한 CEO가 되살릴 수 없을 만큼 엉망인 기업도, 무능력한 CEO가 파괴할 수 없을 만큼 우량한 기업도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느 전문 경영인들과 달리 발렌베리 계열사의 CEO들은 임기가 끝나면 다른 발렌베리 관련 기업으로 옮겨가거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의 경영진으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발렌베리 맨'으로 평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재벌과도 비슷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의 특이한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소파 끝부분에 엉덩이를 간신히 걸치고 앉아서는 무릎을 약간 왼쪽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쭉 편 채 기자를 향해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당신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은 장기적 시각

―선대로부터 가문에 내려오는, 혹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또 다른 비즈니스 원칙이 있습니까?

"계속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 윗세대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전통과 경험은 우리 가문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죠. 선대로부터 우리가 배워서 지키려고 애쓰는 것 중 하나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때는 항상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 거래에 그치고 말죠. 또 산업의 배후에 있는 기술적 측면을 관심 있게 보고, 지속적으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에 큰돈을 투자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것들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 발렌베리가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버텨올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발렌베리의 후계자들은 직접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다. 주식은 인베스터(investor AB)라는 지주회사가 갖고 있다. 인베스터는 1916년 SEB에서 분리된 기업 투자 전문 기업으로 스웨덴 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발렌베리가의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워런 버핏의 투자기업)인 셈이다.

그런데 이 회사를 다시 발렌베리가의 공익 재단들이 소유하고 있다.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 마리앤느 앤 마르쿠스 발렌베리 재단, 마르쿠스 앤 아말리아 발렌베리 재단 등이 전체 주식의 24.6%, 의결권의 52.9%를 갖고 있다. 결국 발렌베리 재단이 발렌베리의 기업들을 모두 소유한 셈이다.

각 기업의 이익은 배당의 형태로 투자회사인 인베스터를 경유해 최종적으로는 4개 공익재단으로 귀속된다. 재단에 들어간 돈은 발렌베리 사람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쓸 수 없음은 물론이다. 대신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여러 공익재단과 계열 기업들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경영에 참여하고 급여를 받는다. 발렌베리가 사람들의 개인 지분은 모두 합쳐도 전체의 1% 미만이다. 재단의 돈은 주로 대학 교육이나 연구개발비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한다. 기업 소유권을 사회에 돌려준 대신에 경영권 세습을 인정받은 스웨덴식 타협의 산물이다. (김인춘 교수 기고 참고)


■기업 소유권은 사회에 돌려주고 경영권 세습을 인정받다

―가문의 재산, 즉 기업의 지분 거의 모두를 재단에 귀속시킨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한국에서는 정말 드문 일입니다.

"저는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에서 기업가들이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기부하는 것은 결코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보십시오. 자기 재산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하지 않았습니까? 나라마다 그 나라에 맞는 기업 소유·지배 구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이런 식의 재단들이 출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스웨덴 산업 발전과 대학의 연구개발에 기여하는 데 높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벌써 100여년 전부터 선대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자기 재산의 일부를 떼어내서 특별한 목적의 재단을 세우기 시작했죠.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재단들은 우리 가문의 지속적인 기부와 재산 이전을 통해 인베스터 같은 기업들의 주요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이들 기업이 거둔 수익은 배당금의 형태로 지분을 소유한 재단으로 모이고, 이 수익금은 재단을 통해 스웨덴의 교육과 연구개발 부문으로 다시 분산되고 있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은 지난해에 7억1600만 크로나(약 1200억원)를 스웨덴 대학과 각종 연구소의 연구 개발비로 기부했다. 이 재단이 1917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총 135억 크로나(약 2조3000억원)에 이른다. 스웨덴의 과학자치고 발렌베리 재단의 연구 자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발렌베리 재단은 노벨상 위원회에도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의 소유·지배구조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이 직접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글쎄요…. 아무튼 현재의 방식이 스웨덴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매우 잘 기능을 했고, 우리 가문의 번영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치부(致富)보다는 항상 기업들의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벨프라지 고문이 한 마디를 보탰다. "스웨덴에서는 일단 재단이 설립되면 그 구성이나 목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재단이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구조는 CEO나 총수 개인이 기업을 장악해 운영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 지배구조와 비교해 상당히 안정적인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발렌베리가 사람 1~2명이 계열사 이사회 의장이나 비상임이사로 참여하는 정도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할까?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이 질문에 스웨덴 기업의 독특한 지배구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에서는 기업의 임원 중 이사회 멤버가 될 수 있는 사람이 CEO뿐입니다. 즉 상임 집행이사는 CEO 한 명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상임이사죠. 비상임이사들의 활동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합니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회사 경영은 CEO가 하지만, CEO가 이사회에 철저히 보고하는 문화가 아주 강합니다. 이사회 회장은 이사회 멤버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CEO와 경영 이슈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합니다. 이런 점에서 CEO와 사내 이사들이 기업 경영을 주도하는 앵글로 색슨적인 기업의 지배구조 문화와는 다릅니다."

■특권 의식 버리고 사회에 봉사하라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 고문인 한영우 박사에게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1960년대와 달리 지금 스웨덴 사람들은 발렌베리를 사랑한다"면서 "그들은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경제에서 발렌베리 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의 재벌들 이상인데,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글쎄요" 하면서 가벼운 웃음을 짓더니 대답했다.

"만일 당신이 1960년대에 여기 있었다면 바로 이 건물 앞에서 반(反) 발렌베리 시위대의 물결을 봤을 겁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우리 가문은 그런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 계속 분투해 나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기업 경영에 집중했고, 그 기업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이른바 '68혁명'으로 대표되는 급진적 좌파 운동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발렌베리 가문은 좌파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발렌베리에 집중된 경제력과 이들의 가족 소유 시스템이 시대착오적인 기득권 세력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스웨덴 젊은이들은 날마다 SEB 은행 본사 앞에 모여들어 반(反) 발렌베리 시위를 벌였다.

발렌베리가는 경영이라는 본분에 조용히 집중하면서 가문의 사회적 기여도를 확대해 가는 방법으로 돌파해 갔다. 이때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esse, non videri)'는 발렌베리 가문의 또 다른 원칙이 뿌리를 내렸다. 대중의 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맡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사치를 자제하고, 서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렌베리 회장은 직접 차를 몰고, 가족들과 함께 스톡홀름 시내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그는 "내가 검소한 삶을 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 생활 방식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SEB 같은 금융회사와 사브, 에릭슨 같은 제조업체를 동시에 잘 경영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본래 은행과 인베스터는 한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SEB가 기업들의 지분을 소유하고 지주회사의 역할도 했죠. 그런데 스웨덴에서 은행들이 산업에 대한 지분을 처분토록 강제화된 1916년 서로 분리됐지요. 금융과 산업이 서로 잘 공존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면, 저는 투명성을 꼽고 싶습니다. 발렌베리가 투자한 SEB와 인베스터, 그리고 개별 기업들 모두가 스톡홀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상장된 기업들은 매우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해 왔습니다."

발렌베리 계열 기업들은 서로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의 경우 계열사들이 '삼성'이란 같은 이름과 같은 디자인의 로고를 사용하지만, 발렌베리의 경우 기업 이름에 발렌베리를 쓰지 않고 로고도 모두 다르다. 기업들이 서로를 계열 기업으로 의식하지 않고 CEO가 자율적으로 경영한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CEO와 주요 경영자들은 1년 6개월마다 한 번씩 한 자리에 모여 국내외 경제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에 대한 토론을 하고, 정보를 나눔으로써 유대감을 나눈다.

■전횡을 방지하는 '투 톱' 경영

발렌베리가의 경영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이른바 '투 톱(two-top) 경영'이다. 항상 두 사람의 후계자가 금융과 산업을 나눠 맡으면서 그룹을 이원 통치한다. 계열사의 회장과 이사직도 골고루 나눠 갖는다. 보통 한 사람은 가문의 장자(長子)에게, 다른 한 사람은 형제 중 사업에 관심이 많고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경쟁을 통해 선발된다.

다른 나라의 기업집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히 독특한 시스템인데,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가문의 전통이 됐다. 2세대 경영자로 장남 크누트와 이복동생 마르쿠스 시니어가 공동 경영을 한 이후, 마르쿠스 시니어의 두 아들인 야콥과 마르쿠스 주니어가 3세대의 투 톱으로 등장했고, 다시 마르쿠스 주니어의 장남 마르크와 차남 피터가 4세대 경영을 물려받았다.

마르크가 1971년 자살로 추정되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면서, 4세대 경영은 오랫동안 피터 발렌베리 혼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후계자를 선정하면서 '투 톱 경영'의 룰(rule)을 지켰다. 그는 큰 형의 아들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을 대표자로 내세우고, 자신의 아들 야콥 발렌베리를 또 한 사람의 후계자로 내세웠다. 결국 발렌베리의 5세대 경영은 사촌이 서로 공동 경영하는 모양새가 됐다.

발렌베리 회장은 사촌인 야콥과 서로 다른 분야를 책임지고 있지만, 생각이 무척 비슷해서 서로 죽이 잘 맞는다고 했다. "특히 장기적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 하는 관점이 비슷하다는 점에서요. 서로 조언을 구하고,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재벌가의 자녀들이 경영권 분쟁을 종종 벌이는데, 야콥과 서로 싸운 적은 없습니까?

"우리 같은 경우 기업의 소유권이 모두 재단에 가 있으니 서로 싸울 이유가 없지요. 재단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시스템 역시 우리 가문에 장기간에 걸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죠."

■"나는 재단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

―소유주도 아니고, CEO도 아니다, 그러면 마르쿠스 발렌베리라는 사람은 어떻게 정의해야 합니까.

"저는 재단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별 기업에서는 집행 임원이 아니라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저와 제 사촌 야콥, 그리고 우리 가문 사람들이 모여서 이러한 우리의 지위에 대해 의견을 모은 적이 있습니다. '재단의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개별 회사의 매일 매일의 비즈니스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저는 (재단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다양한 기업들의 일에 참여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여러 이사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실은 지금도 얼른 다른 이사회에 참가하기 위해 뛰어가야 할 형편입니다."

벨프라지 고문의 블랙베리는 20여분 전부터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발렌베리 회장은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가능한 한 성의있게 대답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졌다.

발렌베리 가문 후계자들의 경영 수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업상 미팅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사업상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아이들을 일부러 문 옆에 앉혀 놓고 대화를 듣게 한다. 그리고 손님이 돌아가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는지, 상대방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에 대해서이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발렌베리 회장은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자녀 교육법이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예전에 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의 교육을 하고 있나요?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국제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요. 스웨덴은 정말 작은 국가고,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죠. 인구는 겨우 900만 명에 불과하며, 대단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입니다. 스웨덴인들에게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가문의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자란다. 대부분 스웨덴 해군 사관학교에 입교하고, 군에 일정 기간 복무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뒤 해외의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일하면서 국제 감각과 인맥을 쌓아야 한다.

발렌베리 회장도 전형적인 코스를 밟았다. 스웨덴 해군사관학교와 미국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그 뒤 1980년 뉴욕의 시티뱅크 본사를 시작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시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아 1993년 인베스터 부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데뷔했다.

마지막 질문에 답변한 발렌베리 회장은 "미안하다"면서 총총히 문밖으로 사라졌다. 벨프라지 수석 부사장도 뒤를 쫓아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발렌베리가의 또 다른 경구(警句)가 떠올랐다. 그의 어깨에는 150년 가문의 역사와 900만 스웨덴 국민의 기대라는 큰 짐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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